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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여행.. 그 중간에서

2009. 5. 5. 19:12
처음에 이 카자흐스탄으로 왔을 때,
5개월 여의 인턴쉽 기간 동안 철저히 현지 문화에 파묻혀 지내고자 햇었다.

'모든 카자흐스탄 인들과 친구과 되리라...  그들이 지저분한 손으로 구역질나는 음식들을 퍼먹더라도 나도 또옥~같이 함께하리라'

'매 끼니 물 대신 양젖을 먹겠지? 두고봐라, 나도 또옥~같이 먹는다,  한비야가 그랬거든..  어린 소녀가 준 꼬질꼬질한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주변 사람들 모두 환호하고,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고'

사진은 글과 관련이 없습니다. 여기는 티벳이라는 군요?! :::사진출처::: blog.ohmynews.com/transville/249625





그러나

그러나 하니까 알겠지?   약간의 반전

막상 와서보니 그들 젊은이들도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먹는거 똑같이 먹는 거이 아닌가.
맥도날드랑 버거킹은 없어도 (맥버거, 킹버거는 있음), 왠만한 패스트푸드점이나 이태리 레스토랑은 거리 곳곳에 다 있고 한국 식당도 5손가락에 다 꼽을 수 없을 정도(6개?)이고 한국슈퍼에는 신라면에서 둥지냉면은 물론이요 젖갈, 김치, 녹두 폼클렌징까지 없는 것이 없어 그야말로 먹는 데 불편함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 물론, 현지 음식 찾아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주변에 계신 분들 먹는데 따라가서 먹고 했으니까. 오죽했으면 처음 2주 동안 입에 들어간 현지 음식이란 점심 때 시켜먹은 라그만(위구르 전통 기름국수)이랑 현지식 쇠고기덮밥이 전부일 지경이었다.

이것이 바로 라그만. 처음엔 라그만 특유의 맛과 향이 독특하고 괜찮았다. 허나 이상하게 한 번 질리고 나니 더는 냄새도 맡기 싫더라.


원소 주기율표에 있는 모든 자원이 존재하는 나라이고 천연가스 및 석유 매장량이 엄청난 나라인지라 온동네 아파트마다 중앙난방 빵빵하였고, 온수는 사시사철 펑펑 나온다니 기름값에 벌벌떨며 보일러 꽁꽁 잠궈놓고 전기 장판위에서 구르고 뒹굴던 한국 우리집 보다야 오히려 더 형편이 낫지 않나

비록, 처음 홈스테이로 들어간 주인집 아줌마와 트러블이 있어 지난 세 달 여 동안 거주지는 불안정하였지만 현지 음식 찾아다니기 보다 한국음식 사다가 편하게 먹고 추운겨울 뜨뜻한 라디에이터 옆에서 따듯하게 보내면서 처음의 그 굳센 각오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하루하루 평안한 삶에 안주하고야 말았다.

그러다가 지난 일요일 오후,
축구 좀 했다고 온몸의 근육이 뭉쳐 숨쉬기도 힘들 지경인 몸을 이끌고 슈퍼를 가려다가
이틀 전부터 어디 밸브가 잠겼는지 따듯한 물이 안나오는데 이 떡진 머리를 감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좀 했었다. 한국이었으면 당연히 머리감고 눈꼽 떼고 갈 것인데(난 모자는 안쓰니까), 이 나라 애들은 머리에 개기름 좀 흘러줘야 '아...  요놈 오늘 아가씨라도 만나러 가는가 보구나' 하니까.

근데 가만 생각하니까
그걸 고민하고 있는 내가 웃긴 거다.
머리 감을까 말까 하는 고민을 떠나서
아니!!  5개월 인턴쉽 하는 동안 5개월간 카자흐스탄 여행한다 생각하고
현지인들과 좋은 추억 만들어보자 했었는데
어느새 여행객이 아니라 알마티 주민이 되어서 주변 시선을 신경쓰고 있다는게...
내 주변에 둘러쳐진 관계, 교류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 와서는
또다시 주변에 나를 옭아매는 관계들을 잔뜩 만들어
이것이 여행인지 일상인지 헷갈려하며 움츠러 드는게 얼마나 웃기냔 말이지.

그래서 이제



어떡할까?
이제 어떡하지




고민 좀 해봐야지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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